엄마와 딸들의 하루
어제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위 언니였다. "시간 되면 오늘 엄마 뵈러 같이 갈래?"
반가운 목소리에 대답도 하기 전에 서둘러 세수부터 했다.
씻는 둥 마는 둥, 부리나케 얼굴만 씻고 적당히 옷을 갖춰 입었다.
엄마가 계신 곳까지는 내가 사는 곳에서 약 2시간 30분 거리. 오전 11시쯤, 언니와 만나 출발했다.
가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언니는 이사를 준비 중인데, 마음에 드는 집을 알아봤다며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평소엔 바빠서 자주 못 보던 얼굴이지만, 오늘처럼 길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참 좋았다.

언니는 평소 아침을 꼭 챙겨 먹는데, 오늘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식사를 못 했다며 휴게소에 들르자고 했다.
휴게소 주차장에 들어섰고,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중, 도로 한복판에 중년의 네 분이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길을 막은 채, 건너는 것도 아니고 멈춘 것도 아닌 채 서 계셨다.
언니는 조심스럽게 클락션을 한번 눌렀고, 그 소리에 중년분들은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길을 비켰다.
순간, 서로 기분이 상할 뻔한 분위기였다.
언니가 창문을 내리려 하길래, 괜히 상황이 커질까 싶어 말렸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언니와 함께 간 김에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만두 세 개에 6,000원, 충무김밥은 10,000원. 생각보다 가격이 꽤 나갔다.
식사 후, 방금 전 일로 신경이 쓰였던 언니에게 "각자 입장 차이일 뿐이야. 우리가 이해하자."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다독였다.
언니는 정말 부지런하다. 일하는 날만 빼고는 틈만 나면 엄마를 찾아뵌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지난번 엄마가 아프셔서 염색을 못 해드렸던 게 마음에 걸린다며, 이번에 병원에서 허락만 해주면 같이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해드리자고 약속했다.
약속시간인 오후 1시 30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엄마는 외출 준비 중이셨다. 두 딸을 마주한 엄마는 우리 이름을 불러주셨다.
간호사 선생님은 "요즘 컨디션이 좋아지셨어요"라고 하셨고, 엄마가 종종 우리 이름도 떠올리시고,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신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신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다.
날씨는 따뜻해졌지만 혹시 몰라 모자와 장갑, 무릎담요를 준비했다.
점심을 드신 후라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엄마는 커피 대신 대추차를, 우리는 엄마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와 슈크림 빵을 시켰다. 테이블에 마주 앉자 엄마는 언니를 바라보며 “머리 감고 바로 온 거야?” 하며 외모를 관찰하신다.
그러곤 “바쁜데 뭐 하러 왔어~ "
"여긴 뭐 하러 와, 커피값도 비싼데~”라며 딸들 주머니 사정을 걱정 하셨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마도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집이 아닌 병원에 있다는 사실이 서운한 마음이 드셨던 것 같다.

밥 먹었냐는 질문엔 "먹을 때 되면 먹겠지~!" 하며 퉁명스레 답하시며,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드러내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엄마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
방금 전 서운함은 잊으신 듯, "결혼은 했어~?"
“자식은 몇이나 있어~?”,
“지금 몇 살이야~?” 같은 질문을 스무 번도 넘게 반복하셨다.
질문한 내용 자체를 금새 기억하지 못하시고 같은 질문을 수 없이 하셨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집 가는 데 얼마나 걸려~?”라고 물으셨다.
아마도 우리가 떠날 시간이 다가왔음을 어렴풋이 느끼신 듯했다.

언니는 엄마와 대화 내내 엄마의 손을 꼭 감싸고 있었다.
그런 언니에게 엄마는 "손이 참 따뜻하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조금 피곤해지셨는지 “이제 그만 가고 싶다”는 말씀에, 우리는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엄마의 얼굴을 조용히 비추었다.
휠체어에 앉아 아무런 말 없이, 딸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셨다. 도착 후, 잠시 미소를 보이시며 손을 흔들고 병실로 들어가셨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 언니와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 조용히 맴도는 말 하나.
“엄마,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