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7

회색 하늘 아래, 젖은 마음 하나

아침 일찍 수영 강습을 마치고, 젖은 머리로 집을 향해 걸었다.물에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 짧은 찰나에도, 마음 한구석이 스르르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오늘따라 하늘은 유독 흐렸다. 빛 한 줄기 없는 잿빛 구름은 내 마음 상태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괜스레 우울하고, 말없이 무거웠다. 요즘, 가족과의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그간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들이 어느 순간부터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예전에는 무슨 일이든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과 이제는 눈을 마주치기도 어렵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멀어질 때의 간극은 더 아프고 날카로운 것 같다. 흔히들 ‘가까운 사람이 더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말을 무심히 들..

가족 2025.03.24

엄마와 딸들의 하루

어제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바로 위 언니였다. "시간 되면 오늘 엄마 뵈러 같이 갈래?"반가운 목소리에 대답도 하기 전에 서둘러 세수부터 했다.씻는 둥 마는 둥, 부리나케 얼굴만 씻고 적당히 옷을 갖춰 입었다.엄마가 계신 곳까지는 내가 사는 곳에서 약 2시간 30분 거리. 오전 11시쯤, 언니와 만나 출발했다.가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요즘 언니는 이사를 준비 중인데, 마음에 드는 집을 알아봤다며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평소엔 바빠서 자주 못 보던 얼굴이지만, 오늘처럼 길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참 좋았다.     언니는 평소 아침을 꼭 챙겨 먹는데, 오늘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식사를 못 했다며 휴게소에 들르자고 했다.휴게소 주차장에 들어섰고,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중, 도로 한복판에 중년..

가족 2025.03.21

"오랜만의 가족 모임, 다시 이어진 형제의 인연"

나는 형제가 많다.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고, 이제 우리는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각기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릴 때는 한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장난도 치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따뜻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각자 독립하면서 형제들 간의 만남은 점점 줄어들었다.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각자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들끼리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1년에 한 번은 다 같이 모여서 얼굴도 보고 시간을 함께 보내자.” 누구 하나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년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난 해에는 그 첫 번째 모임..

가족 2025.03.18

울리는 전화벨 소리, 끊어진 마음

점심시간, 익숙한 이름점심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를 타며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떴다. 하지만 나는 선뜻 손을 뻗지 않았다. 벨소리는 계속 울렸지만, 나는 그냥 기다렸다. 결국 전화벨이 멈췄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저었다.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 전화의 주인은 가족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존재,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가족이라는 이름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가족 중 한 명쯤은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관계에서부터 틀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

가족 2025.03.13

“놓을 수 없는 손, 사라져가는 온기”

오늘도 엄마를 보고 왔다.창가에 앉아 계신 엄마는 한층 더 여위어 있었다.손등의 핏줄이 더 도드라지고, 손을 잡자마자 느껴지는차가운 온기에 가슴이 시렸다. 한때는 내 손을 꼭 감싸던 따뜻한 손.어릴 적, 넘어져 울 때도,잠 못 이루던 밤에도그 손길 하나로 다 괜찮아졌는데.이제는 내가 엄마의 손을 감싸지만,그 온기를 되돌려줄 수 없을까 봐조금은 두려워진다. "엄마, 잘 드셔야 해요."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엄마는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담긴 말 없는 사랑이그 어떤 대답보다 깊이 스며든다. 엄마의 시간이 조금씩 가벼워질수록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건강하게,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면서도그 바람이 욕심일까 두렵다. 오늘도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작은 기도를 올린..

가족 2025.02.28

엄마의 사랑,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

어느 더운 여름날, **"엄마가 올라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터미널에서 엄마가 타고 오실 버스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화내지 말고 엄마랑 잘 지내야지" 다짐했다.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시는 엄마를 본 순간,등에 배낭을 메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시는 모습을 보자 화가 먼저 치밀었다.엄마는 늘 그랬다.자식들 집에 올 때마다 손수 만든 음식이나지인들이 준 물건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바리바리 싸 들고 오셨다.하지만 정작 가방을 열어보면 꼭 필요한 것도,특별히 맛있는 음식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가끔은 가방 속 음식물이 흘러 버스 기사님께 혼나는 일도 있었다.그래도 나는 겨우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한마디만 하고,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집에 도착한 엄마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가져온 물건들을 꺼내며..

가족 2025.02.14

mam

"엄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서론오랜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씩씩하고 강한 존재였다.집안일도, 육아도, 경제적인 부분도 모두 엄마의 손길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물론 아빠도 계셨지만, 우리 가족을 지탱하고 이끌어간 것은 단연 엄마였다.그때는 몰랐다.그저 엄마는 원래 그런 줄만 알았다.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엄마는 참으로 억척스럽게, 누구보다 단단하게,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셨던 것이다.본론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그 씩씩하던 엄마도 이제는 머리카락 하나 검은 데 없이 모두 하얗게 세버리셨다.뽀얗고 팽팽하던 피부는 어느새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주름이 가득했다.그렇게 평생을 가족만을 위해 살아오신 엄마는 지금, 노인 보호시설에 계신다.엄마가 워낙..

가족 202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