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익숙한 이름
점심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를 타며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떴다. 하지만 나는 선뜻 손을 뻗지 않았다. 벨소리는 계속 울렸지만, 나는 그냥 기다렸다. 결국 전화벨이 멈췄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저었다.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 전화의 주인은 가족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존재,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가족 중 한 명쯤은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관계에서부터 틀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몰려왔다.
최근에는 가족 모임이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에게 보고 싶었다며 연락처를 묻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말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에 순간 측은함이 밀려왔다. 망설이다가 결국 번호를 눌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듣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으면, 걱정할 일도 화날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날 이후, 전화벨은 아무 때나 울렸다. 나는 그와의 통화를 계속해서 꺼려왔다.
변해버린 모습
오랜 시간 동안 그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너무 많이 변해버린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아니, 불쌍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를 우상처럼 생각했다. 그때의 모습은 빛이 났고,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가 다른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그가 사람을 잘못 만나서 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두 사람이 함께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일 것이다. 서로의 잘못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똑같았다.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변화
1년 전, 그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 그의 자식이 세상을 떠났다. 모든 가족들은 그들이 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큰 일을 겪고도 바뀌지 않는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문을 갔을 때 나는 나의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했다. 여전히 같은 태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심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을 포기했다. 변화를 바라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그리고 오늘, 울린 전화벨 소리는 나에게 그런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마무리
나는 여전히 벨소리를 듣고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받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가끔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더 이상 그 관계에서 나 자신을 갉아먹고 싶지 않다.
오늘도 그 번호에서 전화가 온다. 벨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맴돌지만, 나는 받지 않는다. 받으면 또 무슨 이야기가 오갈까. 듣고 나면 후회할까, 아니면 또다시 화가 날까. 그동안의 모든 기억이 떠오르고, 묻어두려 했던 감정들이 다시금 들끓는다.
어쩌면 그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사람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지. 어쩌면 그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도 변했고, 나도 변했고, 우리 가족도 변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이 아니었음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말들을 반복하고, 같은 후회를 하고,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나 역시 변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직도 그의 전화 한 통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는 연락을 끊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언젠가 그가 정말 변할 날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벨소리는 끊겼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오늘도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그냥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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