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더운 여름날, **"엄마가 올라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터미널에서 엄마가 타고 오실 버스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화내지 말고 엄마랑 잘 지내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시는 엄마를 본 순간,
등에 배낭을 메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시는 모습을 보자 화가 먼저 치밀었다.
엄마는 늘 그랬다.
자식들 집에 올 때마다 손수 만든 음식이나
지인들이 준 물건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바리바리 싸 들고 오셨다.
하지만 정작 가방을 열어보면 꼭 필요한 것도,
특별히 맛있는 음식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가끔은 가방 속 음식물이 흘러 버스 기사님께 혼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겨우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한마디만 하고,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가져온 물건들을 꺼내며 "이거 좋은 거야, 몸에 좋대" 하고 내 눈치를 보셨다.
아마도 내가 잔소리할 걸 예상하신 듯했다.
우리는 늘 같은 대화를 반복했다.
"이걸 왜 가져와, 여기도 다 있는데?"
"이거 먹을 수나 있는 거야?"
엄마의 마음을 알면서도,
무거운 짐을 들고 오셨다는 생각에 화가 나고,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출근하면서
엄마께 현관 비밀번호와 대문 비밀번호를 알려드렸다.
혹시 산책이라도 다녀오실까 싶어서였다.
아침과 점심을 챙겨 놓고,
중간에 전화해 "식사하셨어요?" 물으니
엄마는 **"걱정 마라, 잘 먹고 있다."**고 하셨다.
"에어컨 끄지 말고 맞춰놓은 대로 두세요."
더운 날씨를 걱정하며 신신당부했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집안 온도가 32도였다.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창문 열어 놨어, 하나도 안 더워."
엄마는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시며 빙그레 웃고 계셨다.
너무 속상했고,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엄마, 이럴 거면 우리 집에 오지 마! 엄마를 보면 자꾸 화가 나!"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웃으며 대답하셨다.
"나 안 더워. 뭐 하러 혼자 있는데 전기세 아깝게 에어컨을 틀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평생을 시골에서 사셨다.
혼자 계셨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웃들과 이야기하고 밭일하며 바쁘게 지내셨다.
그래서 외로움을 크게 느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형제들이 있는 도시로 이사 온 후,
이웃도 없고, 시골처럼 쉽게 들락거릴 사람도 없었다.
엄마는 늘 집에 혼자 계셨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나에게
"한번 놀러 와라."
"시간 되면 와라."
"별일 없으면 와라."
"집에 뭐 해놨는데 가지러 와라."
그렇게 빗말처럼, 외로움을 표현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큰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응급실에 계셔. 입원하셨어."
언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으셨고,
혹시 몰라 엄마 집 아래층 아주머니께 연락해
집 비밀번호를 알려드려 확인을 부탁드렸다.
엄마는 집 안에 계셨지만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 계셨다.
그 후, 엄마는 큰언니 집에서 지내셨다.
입원 전보다 많이 좋아 보이셨고,
나 역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얼마 후,
큰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진찰 한번 받아봐야 할 것 같아.
아마도 치매 초기 증상인 것 같아."
말도 안 됐다.
믿을 수 없었다.
왜?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날 나의 행동들이 떠올랐다.
"엄마, 이럴 거면 우리 집에 오지 마!"
"엄마를 보면 자꾸 화가 나!"
내가 내뱉었던 말들이,
엄마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꺼내셨던 것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죄책감에 눈물만 흘렸다.
그 후,
엄마의 치매는 더 진행되었고,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나는 그냥 울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엄마 앞에서 우는 건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이제는 자주 찾아뵙고,
울지 않고 웃으며 이야기하려고 한다.
엄마의 마음도, 내 마음도 달래며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좋아지시면 꼭 함께 살고 싶다.
정말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엄마의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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